요즘 뉴스에 '촉법소년'이라는 단어가 끊이지 않습니다. 끔찍한 범죄 소식에 많은 분이 분노하고 '처벌 강화'를 외칩니다. 그 심정, 백번 공감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그보다 한발 앞선 단계인 **'우범소년(虞犯少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촉법소년'이 이미 병이 발생해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라면, '우범소년'은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용종을 발견한" 건강검진 상태입니다.

이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로서, 그 비용의 실체를 분석해 드립니다.


1. '우범소년', 도대체 누구인가요? (촉법소년과의 결정적 차이)

많은 분이 혼동하십니다. 용어부터 명확히 잡고 가겠습니다. 이는 소년법(우리나라 법률)에 명시된 3가지 분류입니다.

  • ① 범죄소년 (14세~19세 미만): 죄를 저지르고 형사 처벌이 가능한 소년

  • ② 촉법소년 (10세~14세 미만): 죄를 저질렀으나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 '보호처분'을 받는 소년 (<- 지금 가장 논란의 중심)

  • ③ 우범소년 (10세~19세 미만):

    아직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보호자의 방임, 불량 집단과의 교류, 잦은 가출, 유해 환경 배회 등으로


    **"앞으로 죄를 범할 우려(虞)가 있다"**고 판단되는 소년.

이해가 되시나요? 우범소년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경계선'에 서 있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예방 및 교육)'**이 내려집니다.

2. 우리가 '우범소년'에 주목해야 하는 경제학적 이유

저는 이것을 '사회적 투자의 실패' 관점에서 봅니다. '우범소년' 단계에서 개입하는 비용을 1이라 할 때, 이 아이가 '범죄소년'이나 성인 범죄자가 되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100, 1000이 넘습니다.

우리가 이 '신호'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3가지 막대한 비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용 1. 직접적인 교정 비용 (천문학적 세금 투입)

  • '우범소년' 단계에서의 상담, 교육, 그룹홈 등 '보호처분'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 하지만 이 시기를 놓쳐 '범죄소년'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 [수사 → 기소 → 재판 → 소년원/교도소 입소]

  • 이 모든 과정에 막대한 경찰, 검찰, 법원, 교정 인력과 예산(세금)이 투입됩니다. 이 비용은 '우범소년' 예방 비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비용 2. 잠재적 생산성의 완전한 상실

  •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비용입니다.

  • 경계선에 있던 한 아이가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그 아이가 평생에 걸쳐 창출할 수 있었던 '경제적 가치(노동력, 창의성)'는 0이 되거나 마이너스가 됩니다.

  • 오히려 평생 사회의 안전망(기초생활보장 등)에 의존하거나, 재범을 통해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 경제 전체의 손실입니다.


비용 3. 피해자 회복 및 공동체 신뢰 상실 (측정 불가 비용)

  • 가장 무서운 비용입니다.

  • '우범소년'이 '범죄소년'이 되는 순간, 반드시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손실과 트라우마는 돈으로 환산조차 불가능합니다.

  • 나아가 "이웃을 믿을 수 없다", "밤길이 무섭다"는 '공동체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의 붕괴를 가져옵니다. 이는 모든 경제활동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손실입니다.

3. '낙인'이 아닌 '경고'로 받아들여야

일각에서는 "죄도 안 지었는데 '우범소년'으로 분류하는 것은 과도한 낙인"이라고 우려합니다.

이는 본질을 잘못 본 것입니다.

'우범소년' 제도의 본질은 '낙인'이나 '처벌'이 아닙니다. **"이 아이에게 지금 당장 사회와 가정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는 강력한 '신호'이자 '경고'입니다.

이는 아이를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유해 환경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입니다.

💡 결론: '처벌'보다 값싼 '투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촉법소년'의 범죄에 분노하며 더 강한 처벌, 더 높은 담장을 외칩니다. 하지만 이미 담장을 넘어버린 아이들을 벌주는 것만으로는 다음 아이가 담장을 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예방'에 집중합니다.

'우범소년' 단계의 아이들에게 100만 원의 상담/교육비를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한다면, 우리는 몇 년 뒤 그 아이로 인해 발생하는 1억 원의 '사회적 손실'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까요?

우리의 관심은 '처벌'을 넘어, '예방'이라는 더 근본적인 해답으로 향해야 합니다. '우범소년'이라는 경고 신호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