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드라마에서 "피고인은 미필적 고의가..."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죠?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고의'는 '고의'고 '실수'는 '실수'지, '미필적'은 또 뭘까. "그럴 줄 몰랐다"는 말과 "설마 무슨 일 있겠어"라는 말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바로 이 무서운 단어가 있습니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 개념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지인이 겪은 안타까운 사고의 법적 공방을 지켜보며, 이 단어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크게 좌우할 수 있는지 절감했습니다.
오늘은 법률 교과서가 아니라, 실제 우리 삶의 이야기로 이 헷갈리는 개념을 확실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설마"와 "어쩔 수 없지"의 결정적 차이
미필적고의를 이해하려면 딱 두 가지 단어만 기억하면 됩니다. '예견' 그리고 '용인'.
예견(Foresight): "내가 지금 이 행동을 하면,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라고 미리 아는 것.
용인(Acceptance): "하지만... 뭐 어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도 난 상관없어. 그냥 할래."라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확정적 고의'(우리가 흔히 아는 '고의')가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원한 것"이라면, 이것은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소극적으로 방치한 것"입니다.
가장 MVT(최소기능제품)한 "인식 있는 과실"과의 차이
여기서 많은 분이 "그럼 '인식 있는 과실'과는 뭐가 다른가요?"라고 묻습니다. 둘 다 '결과를 예견'한 것은 같거든요.
인식 있는 과실: "사고가 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설마 나겠어. 난 베테랑이니까 절대 사고 안 내."라고 결과를 부정합니다.
미필적고의: "사고가 날 수도 있겠네. 뭐, 나도 어쩔 수 없지."라며 결과를 **용인(O.K.)**합니다.
개인적인 견해: 저는 이 '용인'이라는 심리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피해 가능성을 알면서도, 자신의 순간적인 편의나 욕심 때문에 "상관없다"고 눈감아버리는 거니까요. 이것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선택'입니다.
사례 1. 어둠 속 뺑소니, "사람인 줄 몰랐다"
가장 고전적인 예시입니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운전하던 A씨가 '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쳤습니다.
(역추론/과실) 만약 A씨가 즉시 차를 세우고 "아, 고라니였구나" 확인하고 갔다면, 혹은 '고라니겠지'라고 강하게 확신했다면 '과실'에 그칠 수 있습니다.
(미필적고의) 하지만 A씨는 '혹시 사람일까?'라는 예견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서 가기 싫고, 무섭다"는 이유로 그냥 액셀을 밟았죠. 이는 "만약 사람이었고, 내가 방치해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용인'의 의사가 포함된 것입니다. 법원은 이를 살인(또는 상해)의 미필적고의로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혹시 뉴스에서 이런 사건을 보며 '저건 실수일까, 고의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사례 2. "장난이었어요" 그 위험한 말의 무게
최근 학교나 직장 내 괴롭힘, 혹은 친구들 사이의 장난이 도를 넘어 심각한 상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B씨 무리는 C씨를 "장난으로" 툭툭 치고 밀었습니다. C씨가 서 있던 곳은 모서리가 날카로운 책상 근처였습니다.
(예견) B씨는 "여기서 밀면 C가 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용인) "설마 그러겠어"라고 생각했더라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C씨를 밀었다면 "크게 다쳐도 어쩔 수 없다"는 심리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C씨가 실제로 다쳤다면, 이는 단순 '과실치상'이 아닌 '상해죄'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잠깐, 여기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이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하면 처벌이 약해질 거라 오해합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고의'는 '확정적 고의'와 '미필적고의'를 모두 포함합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감형 사유가 아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법원은 '살인의 고의'를 판단할 때, 그가 '적극적으로 죽이려 했는지'만 보지 않습니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알면서도 "상관없다"고 행동했다면, 둘 다 똑같은 **'살인의 고의'**로 봅니다.
물론 형량을 정할 때 '확정적 고의'(계획 살인 등)보다는 참작될 여지가 있겠지만, '과실'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과실'은 '실수'의 영역이지만, '미필적'이라도 '고의'는 '범죄'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역추론/반대사례) 고위험군 환자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의사는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음'을 예견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두지 않겠다"며 최선을 다하죠. '용인'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전문가의 '위험 감수'와 범죄자의 '위험 용인'의 차이입니다.
궁금증 풀이: "그래서 이게 뭔가요?" (FAQ)
Q1. 그래서 '미필적고의'라고 하면 처벌이 약해지나요?
A. 아닙니다! "어? 고의는 고의인데 좀 약한 고의인가?"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법적으로는 '과실'이냐 '고의'냐의 문제일 뿐, 둘 다 '고의'로 인정되어 해당 범죄(살인, 상해 등)로 처벌받습니다.
Q2. '인식 있는 과실'이랑 '미필적고의'랑 대체 뭐가 다른 거예요?
A. 딱 한 단어, '결과'에 대한 태도입니다. 과실은 "결과가 안 일어날 거야!"라고 믿는 것이고, 고의는 "결과가 일어나도 상관없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Q3. 그걸 법정에서 도대체 어떻게 증명해요? 마음속을 어떻게 알죠?
A.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진술)보다 **'객관적인 행동'**을 봅니다. 뺑소니 예시에서 '그냥 간 행위', 폭행 예시에서 '굳이 위험한 모서리 근처에서 민 행위'가 바로 그 사람의 '용인' 심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마치며: 알고도 행하는 것의 무거움
결국 이 모든 논의는 '책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마"라는 안일함이 "어쩔 수 없지"라는 무관심으로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그것이 '실수'의 영역에 머무를지, '범죄'의 영역으로 넘어갈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일지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가 조금 무거웠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미필적고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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